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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그런얘기

나한테까지 그럴 줄은 몰랐지

킬 빌 시리즈는 엄청나게까진 아니어도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틀어 놓고 딴 짓 하기에도 좋다. 특히 인상깊은 씬들이 있는데 1편에서는 고고와의 격투씬이고, 2편에서는 파이메이와의 수련씬이다. 물론 다른 격투씬들도 다 재미나지만, 내 관점에서는 저 둘이 가장 강렬하다.

 

실은 그래서 언제나 킬 빌 1이 2보다 낫다고 생각해 왔다. 왜냐면 고고와의 격투는 영화의 거의 절정부분이고, 물론 이후 크레이지88과 오렌 이시이와의 피튀기는 대결씬이 이어지지만, 모두 예상된 전개대로 결말을 향해 잘 달려가는 느낌이거든. 하지만 파이메이와의 수련씬은 관에 갇혀서 회상하는 장면이고, 그 장면 이후의 엘 드라이버와의 결투씬이 끝나면 사실 영화가 끝났다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강렬하기도 하고. 그래서 결말에서 빌과의 전투씬은 덤으로 붙어 있는 것 같이 여겨지고, 사실 별다른 반전도 없으면서 긴장이 고조되지도 않는 좀 애매한 결말이랄까, 그런 느낌이다.

 

어떻든, 오랜만에 다시 본 영화에 대해 사설이 길었던 이유는 다름아니라 2편 마지막 그 애매한 빌과의 전투씬에서 내게 의미심장한 대화를 발견해서다.

Bill: Was my reaction really that surprising?

빌: 내 반응(결혼식장에서 모두를 죽인 일)이 그렇게 놀라운 일이었나?(즉, 자긴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고 너는 그런 나를 알고 있지 않았느냐는 뜻.)

The Bride: Yes, it was. Could you do what you did? Of course you could. But, I never thought you would or could do that to me.

신부 : 알고 있었지만 나한테까지 그럴 줄은 몰랐지!

Bill: I'm really sorry, Kiddo. But you thought wrong

빌: 미안하지만 네가 잘못 생각한 거야.

 

아마 이 부분을 작년 초에 봤더라도 작년에 내게 일어났던 비극을 막지는 못했을 거란 생각이다만, 어떻든 이제 와서 저런 대사를 보면서 작년의 그 일이 다시 생각나면서, 기분이 참 뭐랄까, 회한이랄까, 후회랄까. 뭐 그런 느낌이 들면서, 앞으로는 킬 빌 1보다 2를 더 기억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다들 알다시피, 영화에서는 이후 신부가 빌을 오지심장파열권으로 저세상으로 보낸다. 내게는 오지심장파열권같은 기술은 없으니 뭘로 이 복수를 한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