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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그런얘기

왜인지는 모르겠다. 왼손 새끼손가락 끄트막에 작은 상처가 나 있었고, 그 상처에 지렁이 꼬리 같은 것이, 마치 소라 꺼내 먹을 때 삐져나온 알맹이처럼 기다랗게, 상처 안쪽으로부터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나와 늘어져 있었다. 잡아당기면 빠져나올 것 같아서 잡아당겼는데 그만 툭 끊어졌다. 얼마 안 남은 끄트머리를 잡고 다시 조심스럽게 잡아당기자, 새끼손가락 끝 상처를 통해서 손바닥 길이만한 무언가가 빠져나왔다. 그건 마치 무슨 애벌레 같았다.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앤더슨이었던 초반부에서 스미스가 뱃속에 집어넣었던, 벌레처럼 생긴 추적장치 비슷하기도 했고, 나중에 생각해 보니 기생수같기도 했다. 피는 안 났고 그다지 아프다는 느낌도 없었다. 외려 앓던 이가 빠진 듯 시원했달까. 이게 뭘까. 빠져나온 그것은 좀 꿈틀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비몽사몽의 순간에서 깨어나는 동안, 난 그게 지난 두어 달간 나를 괴롭혀 온 두드러기 증세와, 매일 새벽 잠 못 자며 일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된다는 신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돌이켜 보면 아주 칙칙한 꿈인데 꿈꾸고 나서 닷새가 지났어도 여전히 생생히 기억난다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아, 여기 남겨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