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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그런얘기

다음 소희

(스포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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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보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영화다. 영화적인 완성도는 높아도 관객을 괴롭게 하는 영화들(대표적으로 [길버트 그레이프])이 있는데, 한동안은 [다음 소희]를 언급하게 될 것 같다. 몇몇 평론가들은 응원의 의미로라도 꼭 봐야 하는 영화라고들 하는데,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나로선 두 번 보고 싶지는 않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그래서 더더욱 작금의 정치 현실과 맞닿아 있는 부분들도 많이 떠오르지만, 내게 크게 남은 감상은 두 가지다.

 

1.

소희의 주변 인물들의 행동을 보면, 이 영화가 [1987]과 무척이나 대비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1987]은, 박종철 이한열의 죽음으로 대표되는 무도하고 엄혹한 시절의 폭력적인 내용들이 묘사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딩에 가까운, 어쩌면 판타지같은 영화다. 보통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소명 의식을 저버리지 않고 각자가 해야 할 윤리적 행동들을 기꺼이 함으로써, 그 모든 행위들이 하나로 모여서 결국엔 연희(김태리)같은 보통 사람도 혁명에 나서게 된다는 것이니까. (물론, 87년 대선을 노태우가 승리했으니 반쪽짜리일 수는 있겠으나, 영화에서 거기까지 다루고 있지는 않죠.)

 

그에 반해, [다음 소희]에 등장하는 소희의 주변 인물들 - 부모, 학교 선생, 직장 상사, (배두나를 제외한) 경찰 등 모두는 스스로의 자리에서 해야 할 최저선의 도덕적 책무를 다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훌륭한 점은 이러한 묘사에서 각 개인의 악함을 단순히 그들의 인성 문제로 보게 하지 않도록, 이 모든 폭력이 결국은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주변에 아무도, 부모조차도 자기를 이해해 주지 못하고 도와 줄 수 없다는 절망감이 소희의 극단적 선택의 원인이다. 가장 컸던 것은 역시 부모의 무지함이 아니었을까. 딸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힘들어서 그만두겠다는 말을 (아마도 일부러) 흘려 듣고 말았던. 그래서 "그래도 대기업인데 설마"라고 하다가 딸의 죽음 앞에 뒤늦게 후회하는. (이 영화가 또한 훌륭한 점이다. 부모를 무조건 피해자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소희의 죽음 후 이 일을 덮으려는 자들이 흘리는 "걔가 원래 성격도 모나고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있었고 가족관계도 나빴다" 같은 유언비어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주변인들도 결국 이 모든 폭력에 가담하는 셈이다. 구조적인 문제를 파헤치려는 배두나에게 "니가 왜 그런 걸 신경쓰냐"던 경찰서장(?)도 마찬가지다. 이 대목에서 나는 작금의 검찰 독재 체제에서 벌어지고 있는 되도 않는 정치적 수사-구속-기소와, 그 일들의 내막을 굳이 알려 하지 않는 "바쁜" 보통 사람들이 검-언이 합심해 벌이는 언론플레이에 별 생각 없이 동조하는 광경을 떠올렸다. 감독의 의도도 그런 것이었으리라 본다.

 

2.

이 블로그에 6년 전에 썼던 이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그렇게 힘들면 진작 그만뒀으면 될 일 아닌가, 왜 굳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나" 같은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이유다. 옳다고 믿는 바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본인이 아니라 본인 주변으로부터 온다. 저 링크에 있는 내 경우에도, 백여 주 남짓한-그야말로 새발의 피도 안 되는 수준의 주식 의결권을 사측에 위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는 당시 "전무님이 대노하셨다", "너 때문에 부서 전체가 찍혔다", "네 양심 지키자고 동료들에게 피해를 줘서야 되겠느냐" 라는 협박을 들었어야 했다. 그리고 결국 그 협박 때문에 원래 계획했던 참여연대에 위임하는 걸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게 내 나이 스물 아홉때의 일이다. 소희는 그 때의 나보다 열 두 살쯤은 더 어렸고, 고작 주식 백여 주 의결권 정도는 비할 바가 아닌 열악한 근무환경과 부담에 시달렸다.

 

구조화된 폭력은 개인을 괴롭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안다. 바로 본인 주변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1987]에서도, 그 모든 고문에 의연했던 한병용(유해진)이 가족들을 들먹여 협박하는 몇 마디에 무너진다. 진상 고객에게 맞대응하거나 해지를 원하는 고객에게 고분고분(?) 해지를 해 주면 부서원들을 괴롭히는 게 되고, 견딜 수 없어서 그만두면 학교에 누를 끼치는 게 되고, 그래서 학교는 그렇게 그만둔 아이들을 빨간 명찰을 달아서 별도 관리(라기보다는 징벌)를 하고. 학교도 교육청도 노동청도 "그건 내 소관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방관하고.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외쳤던 게 벌써 반 세기 전인데.

 

...

영화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끝난다. 대놓고 폭력과 불법을 자행해도 아무 벌도 받지 않고, 그걸 지적하는 쪽을 되레 법 기술로 때려잡고. 그 모든 불의를 주류 언론은 옹호하거나 못 본 체하는데 사람들은 살기 바빠서 내지는 골치아파서 외면하고.

 

소중한 걸 잃고 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소희 부모님처럼. 무지는 죄다.